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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좋아.

일상 2013. 7. 15. 23:12

작년 여름은 정말 지옥같았다. 나랑 오래 알던 친구들은 너 알고 지내면서 니가 여름에 덥다고 하는 거 처음 본다고 까지 했으니까 말이다.

내가 일하던 사무실의 벽걸이 에어컨은 아무리 틀어도 시원하지 않았고, 가스라도 충전하면 나아질까 했는데 가스충전 하는 아저씨도 도저히 너무 주문(?) 이 밀려서 못온다고 하시고. 나는 정말 에어컨이 고장난 줄 알았다. 틀어도 틀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으니까. 그 때문에 나는 후임자 앉혀놓고 인수인계 하면서 꼭 가을되면 에어컨에 가스 충전해 놓으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그렇게 지옥같은 여름을 보냈기에 나는 여름이 좀 싫어질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나는 여름이 아직도 좋다. 물론 요 며칠 수건이 너무 안마르고 빨래도 마를 기미가 안보여서 제습기를 사고 싶어지는 건 우울하지만 (더 우울한 건 내가 영국 호텔 예약하고 비행기를 예약하느라 돈을 탈탈 털어 썼기 때문에 제습기 살 돈이 없다는거다. 그것만 아니었으면 아마 당장 샀을거야.) 나는 여름에 얇은 이불 덮고 누워 있을 때 그 느낌이 정말 좋다.

가끔 초등학교 3학년 이던 내가 여름 방학 의 어느 날 거실에 나와서 잤던 밤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난 책을 읽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던 것 같다. 특별한 일도 없었던 밤이었는데 왜 그날 밤만은 그렇게 기억이 또렷한지.

또 이건 앞에 말한 거실에서 자던 때보다 더 어렸을 땐데 우리집이 낡아빠진 나무문이 달린 엄청 후진 집에 살던 시절,  문이 잘 맞지 않아서 닫을 때는 발로 꽝 차야만 하는 그 집에서 살던 시절 어느 여름밤, 나는 아마 엄마랑 밤에 교회를 다녀왔던 것 같다. 낮에는 비가 새차게 내렸었고 그래서인지 우리 문 옆 담벼락에 왕달팽이가 기어가고 있었다. 역시 문이 너무 후져서 따기 힘들었기 때문에 우리 엄마가 또 그 문때문에 낑낑 대고 계셨고 기다리는 동안 나는 문득 뒤를 돌아 하늘을 봤다. 순간 내 뒷통수 뒤로 별이 쏟아지는 것 처럼 엄청 크게 엄청 많이 떠 있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아직도 햇갈릴 정도로 말이다. 8살이었던 내가 순간 울컥 하면서 눈물이 날 뻔 했으니까 말이다.

또 더 어렸을 때로 가면 난 한여름에 화단에 앉아서 앉아서 채송화 씨가 들어 있는 작은 주머니를 열어서 화단에 뿌려주고 혼자 놀고 있었다. 아마 어렸을 때도 혼자 노는 걸 좋아했나보다. 별 거 아닌데 이거 역시 참 강렬하게 기억이 난다. 내가 입었던 원피스와 샌들 모양까지 말이다.어렸을 때 우리 엄마는 나에게 예쁜옷만 사서 입히셨었다. 운동화도 나이키만 사서 신겨주고. 물론 우리집이 잘살았을 시절 얘기다.

그때 타들어가는 듯 뜨거웠던 내 목덜미의 느낌과 채송화 꽃을 돌로 빻아서 빨간 물을 손바닥에 묻었던 것 같이 작고 아무일도 아닌게 생각나고 그런다.

가끔 내게 죽음이 닥치면 앞에 말한 거 이외에 다른 장면도 다 스쳐지나가겠지 싶다. 나중에 애 낳으면 잘해줘야겠다. 이런 걸 보면 말이다.

 

태생적으로 추운 걸 싫어했던 나는 겨울에는 이런 기억이 별로 없다. 어렸을 때 사진을 봐도 여름에 찍은 사진이 압도적으로 많고 말이다. (아마 우리 부모님도 겨울을 싫으셨던 모양이다. 우리 가족이 강원도에 살기도 했고.)

 

이러한 기억과 추억들이 자꾸 자꾸 여름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 같다.

 

잠깐 요즘 근황을 말하자면

우리 회사는 고양, 즉 경기 북부에 어찌나 비가 많이 오는지, 이건 한국산 비는 아니다 싶은 내 주먹만한 빗방울이 시도때도 없이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차를 타고가다 그런 빗방울이 창문으로 떨어지는데 너무 놀라서 혼자 소리를 지른 적도 있다.

햇빛이 그립다. 요즘에는 와이퍼를 3단으로 해도 바로 앞 헤드라이터가 안보이기도 하고, 내 무릎 바로 밑까지 차 있는 물 위를 엑셀 밟고 지나가기도 하는데 그럴 때 마다 내 가슴이 쿵쿵쿵 뛴다.

친구는 비 그치면 더워지기 때문에 비 그치는 거 싫다고 하지만, 난 빨리 햇빛이 났으면 좋겠다.

 

막상 무더위가 닥치면 제발 여름 꺼져. 하면서 욕하면서 잠들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