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행인 속 형수

위로 2016. 1. 2. 00:09

머리가 나빠서 책을 한번만 읽어서는 명확하게 기억을 못한다. 인상 깊은 몇몇 구절만 드문드문 기억날 뿐.

나츠메 소세키의 행인 은 엄청 좋아하는 책이지만,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이상하게 난 형의 부인, 그러니까 소설 속 화자의 형수가 그렇게 기억에 남는다.
특히 형수와 와카야마로 가는 기차 안에서의 대화와 분위기 묘사가 생생하다.
전에 이 책을 읽고 쓴 포스팅에도 썼지만,
주인공인 형은 등장하지도 않는 그 장면에서는 형수의 성격에 대한 묘사가 전혀 없음에도 독자는 형수의 성격을 유추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그토록 그 장면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너무 대단해서 경외감마저 드는 소설들은 품위없이 직접적으로 구구절절 설명을 늘어놓지 않는다.
잘된 예술작품은 표현의 차원이 다르다.

소설이든 영화든 우리가 전혀 듣도보도 못한 인물과 이야기를 만드는 게 아니다. 어떻게 표현하고 서술하느냐가 그 작품의 수준을 결정짓는 것이다.

오늘 본 시카리오의 촬영이라든가, 나츠메 소세키의 소설같은 작품들은 역사에 길이 남는 명작이 되는 것이고, 이런 작품과 다르게 자극적이고 직접적이면 범작이 되고.

다커서 읽은 호밀밭의 파수꾼이 읽을 때 마다 목이 매도록 슬픈 것도 같은 맥락인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후

나츠메 소세키

민음사


나쓰메 소세키 책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가 최고 많이 번역되어 나와 있는 것 같은데, 왠지 또 그 책 부터 시작하긴 싫어서 아무 이유없이 선택한 책이 '그 후' 이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보다는 훨씬 더 뒤에 쓰여진 책으로 그 때 문체와는 또 다른 묘미가 있다고 하는데 난 나쓰메 소세키 책은 이게 처음이라서 그런 것 까지 비교할 주제는 못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 다이스케 에 대한 질투심과 부러움을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사업하는 아버지 밑에서 아무 하는 일 없이 하인 거느리고 책 읽고 산책하고 낮잠 자고 하는게 하루 생활의 전부인 30살 다이스케.
책의 뒷부분 서평을 보니 그 사람 의견은 다이스케를 통해 나쓰메 소세키는 그 때 당시 근면, 성실 만을 외치며 영국 등 서양 열강들을 쫓아 일본도 잘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당시 가치관에 환멸을 느끼는 지식인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는데, 난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그 서평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 90% 이상)
단, 읽다보면 나쓰메 소세키는 다이스케 라는 인물에 대해 비난하고 비웃으려고 그런 인물을 만든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고 무작정 그 인물에 대해서 옹호하고 있지도 않고 그렇다.
다이스케라는 주인공에 부러움을 느끼면서 재수 없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여러번 공감하기도 했는데 가장 이해가 되고 공감이 갔던 건 아무리 화를 내려고 해도 화를 낼 수 없는 성격, (진짜 꼴같지 않게) 자기 이외에 모든 것은 낮게 보는 거나, 자신의 주변에 필요 이상으로 예민한 점 등등.

이 소설은 대학 때 친구 히라오카가 오사카에서(오사카였나 교토였나 하여튼 저쪽 간사이 지방) 일하다가 빚만 잔뜩지고 도쿄로 올라와선 다이스케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시작된다. 그렇게 서로 왕래하다가 다이스케가 히라오카의 부인 (대학 때 부터 알고 지내던) 미치요를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
앞서 말한 것 처럼 다이스케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공감하긴 했지만, 이 다이스케의 대학 때 친구 히라오카는 진짜 눈물나도록 불쌍하다. 다이스케에 대한 자신의 열등감을 어떻게든 감추려고 하는 모습이나, 고단하게 사는 모습이나 거기에 심지어 지 부인도 뺐기잖아. 하긴 불쌍한 걸로 치면 미치요가 100배는 더 불쌍하긴 하지만. 음... 아닌가. 그래도 다이스케에게 사랑은 받았으니까 히라오카가 더 불쌍할 수도 있겠네.

난 소설, 영화 등에 있어서는 혐일에 가까울 정도로 일본을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는데, 나쓰메 소세키는 정말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필력의 소유자 인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부분을 소상히 표시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여기에 쓰지는 못하겠지만, 정말 어떻게 이 정도로 심리묘사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봤던 부분이 한 두군데가 아니다. 그래서 이 소설 읽으면서 나쓰메 소세키 책을 꽤 여러 권 사놓고 지금은 산시로를 읽고 있다. 산시로, 그 후, 문 이 3개는 3부작으로 똑같은 인물이 나오진 않지만 대학을 다니는 산시로 - 30살의 다이스케 - 친구의 부인을 빼았아 죄책감에 시달리며 사는 중년 남성 이런 이야기가 된다고 한다. 나는 지금 대학 시절의 산시로를 읽고 있는데 '그 후' 보다는 재미 없다.; 이것도 다 읽으면 여기에 쓰긴 하겠지만.

아 그런데 이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말이다. 인지도에 비해서는 읽기 편한 책은 아닌 것 같다. 지금 읽고 있는 산시로는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에서 출판한 책인데 약간 애매모호한 단어나 지명 등은 주석을 달아서 그 때 당시 상황이랑 연계해서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에 훨씬 읽기 편리하고 좋은데 이 책은 그런 게 하나도 없다.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건가. 물론 거의 모든 소설책이 그렇긴 하지만, 저 시리즈로 된 책을 많이 읽었지만, 막 다른 출판사 번역본에 비해 뛰어나다는 생각이 드는 시리즈는 아닌 것 같다.(인지도에 비해서!!) 뭐 그래도 번역하고 출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중간에 다이스케가 미치요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미치요는 울면서 왜 대학 때 저를 버렸지요? 하고 묻는다. 원래는 둘이 좋아하다가 다이스케가 친구인 히라오카와의 결혼을 적극 주선하여 결국 결혼하게 된 건데, 이 다이스케라는 놈 정말 못난 놈 아닌가. 그런데 난 또 갑자기 궁금해졌다. 혹시 날 스쳐 지나간 사람 중에서 그 때 확실히 날 잡을 걸 하고 가끔이라도 후회하는 남자가 일생동안 한 명이라도 있을까 없을까 하는 것에 대하여 크크큭. (아 구리다 이런 생각) 이런 생각을 하니 급 우울해졌는데, 아무래도 예전에도 앞으로도 한 명도 없을 것 같다.
'그 후' 같이 훌륭한 소설에 이따위 감상평을 쓰고 있으려니 나쓰메 소세키에게 또 죄송하다.

아래 구절은 책을 다 읽고 덮은 후에도 계속 생각이 나서 적어둔다.

P.313

다이스케는 생기가 넘치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한참 동안은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이윽고 그 아름다움을 암암리에 무너뜨리고 있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생각을 하자 슬퍼졌다. 그는 오늘도 그 아름다움의 일부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기 위해 미치요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