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공항'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2.06.30 큰 결정 2

큰 결정

일상 2012. 6. 30. 21:15

저번 주 월요일에는 엄마의 생신이셨다. 요즘 우리집은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이후로 제일 어려운 것 같다. 그 때는 나랑 동생이 워낙 어려서 그냥 저냥 지나갔지만, 지금은 느껴진다. 우리집이 어려운 것이. 물가도 비싸고 우리집에 들어오는 돈은 적고. 다들 어렵다 어렵다 하는데 경제가 나아지면 잘살 수 있는건가?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이러한 이유로 엄마의 생신 선물도 다 생략하고 우리집은 작은 아이스크림 케익 하나를 사서 초도 불고 생일 축하 노래도 부르고 했다.


수요일에는 며칠 전 블로그에 썼던 면접본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최대한 빨리 정리하고 출근하라는 내용이었다. 고맙습니다. 라고 인사하고 전화를 끊는 순간부터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어찌되었든 정말 크나큰 변화가 찾아올 것이라 두렵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잘해낼 수 있을까 고민도 되고. 그런데 이건 내 느낌인데 사장에게 나는 최선책이 아니었던 것 같다. 차선책 정도 됐는데 아마 최선책이 연봉을 높이 불렀거나 다른 데 간다고 했거나... 그래서 이렇게 연락도 늦고, 전화해서도 연신 "잘할 수 있겠냐" 를 물으면서 계속 의심을 했던 것 같다. 솔직히 사장이 제시한 연봉에 사장이 원하는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정도로 충격적인 연봉. 으으. 하지만 난 그 연봉을 감수하기로 했다.

근데 잘할 수 있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거지? 거기서 요구하는 수준이 어느 정도 수준인 지를 알 수가 없으니. 솔직히 말하면 난 사장이 원하는대로 잘할 자신이 없기는 한데. 크크큭.  


사실 6월 9일에 면접을 본 후에 결과 기다리고 있는 중에 학교 교수님이 친구가 하고 있는 회사에 들어가고 싶으면 들어가라고 추천을 해주셨었다. 불시에 그 회사 사장님이 회사로 찾아와서 점심을 먹자고 하는 통에 얼떨결에 면접도 봐버렸는데, 다행히 그날 퇴근 후 연주회에 가기로 되어 있어서 예의 차린 옷차림으로 그 회사 사장님을 맞을 수 있었다. 

그 회사도 사장님은 참 인자하고 좋은 것 같고, 연봉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갈등을 많이 했다. 그래서 수요일에 출근하라는 전화를 받고 퇴근 후 몰래 그 회사를 다녀와봤다. 그리고 시원하게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교수님이 추천해주신 회사는 너무도 멀었다. 난 태어나서 경기도 고양을 처음 가봣는데, 차가 있으면 행복한 회사라더니 김포공항에서 내려서 택시에서 네비게이션에 주소를 치고 찾아가는데 점점 "아.. 여기는 어딘가" 이런 생각이 들고, 점점 골목에 골목을 지나가고 옛날 전원일기에 나올 법한 시골마을 한 가운데 멀쩡한 건물이 하나 딱 있는데 그게 바로 추천해주신 그 회사였다. 차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벌판이라 택시도 다시는 못 잡을 것 같아서 타고 갔던 택시를 타고 다시 김포공항으로 돌아오는데 아쉽지만 이건 아니다. 하는 마음에 큰 결심을 했다. (택시비만 왕복 만오천원 나왔음)  김포공항도 처음 가봤는데 뭐 김포공항도 좋더구만.

내가 거절을 해서 교수님도 조금 입장이 난감하고 삐지신 것 같고, 나도 좀 죄송스럽고 그렇다. 나도 뭐 이럴 줄 알았나.


큰 변화는 내 앞에 있고, 지금 학교에서도 일이 최고 많을 시기라서 마음도 심란하고 인수인계 해주고 난 하루도 제대로 못 쉬고 출근하게 생겼는데 당분간은 휴가 이런 거는 먼나라 얘기겠지. 그냥 한가지 위안은 30살 대한민국 여성으로서 사회에서 기능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거? 그리고 교수님이 추천한 회사를 갔으면 계속 교수님들과 얽힐 수 있었는데, 내가 내 갈길 찾은거라 완전히 여기와는 영원히 안녕을 고할 수 있게 된 거. 이왕 새롭게 시작하는 거 처음부터 다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도 컸으니까.


아 그리고 또 별개로 또 큰 결심을 하나 했는데, 신용카드를 정말 필요한 상황 아니면 사용을 안하기로 했다. 우리집이 어렵기도 하고, 요즘은 체크카드도 꽤 좋은 게 많으니까. 저번달 저저번달 리볼빙 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불어가는 내 신용카드 결재액을 보면서 느낀 바가 좀 있어서. 체크카드를 주사용카드로 만들기 위해서 예금을 분할해지 해서 한 100만원 가량을 통장으로 옮겼는데..(6월 월급은 전액 카드결재액으로 나가버리고 잔액이 없어서 결국 예금을 분할해지했다. 흑흑) 금요일에 혜택 좋은 체크카드도 만들었다. 다음달에 카드고지서 받으면 좀 뿌듯할 것 같다. 좀 힘들겠지만 이보다 더 힘든 일도 해냈으니 잘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사람은 누구나 닥치면 어떻게든 해낼 수 있으니까. 

저번주에는 교회 결국 자느라 못갔는데 내일은 교회가서 기도도 좀 하고 와야지. 한 주 정리도 하고 다음주를 위하여 기도도 좀 하고. 난 신앙심이 깊은 편은 아닌데 그냥 교회가서 눈감고 속으로 소망하는 바를 말하다보면 심신이 편안해지고 진짜로 다 잘될 것 같은 기분도 들어서 교회에 간다. 뭐... 또 자느라고 못갈 수도 있지만.  


아. 근데, 내가 들어갈 회사 사장이 나보고 하도 엑셀 못할 거 같다고 해서 오늘 컴퓨터학원도 등록하고 왔다. 나도 참 어지간히 불안했나보다. 오랜만에 비와서 상쾌한 인천시내를 버스타고 돌아다녔더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다행스럽게도 요즘에는 별로 외롭지도 않고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