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를 마시며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 서로 그닥 새로울 것 없는 사이라 얘기도 유치하게 드라마 보면서 연예인 얘기가 주였다. 맥주랑 포도 먹으면서 친구에게 오른쪽 눈썹 부분에 난 여드름이 너무 아프다고 엄살을 좀 부렸더니 친구가 피부과에서 처방 받아서 주는 연고라고 발라줬는데 신기하게도 그 다음날 여드름이 완전 쏙 들어갔다. 이래서 피부에 돈을 들이는구나 싶었다.
기차를 장시간 타서 그런지 난 엄청 피곤했고, 친구네 집에서 손님왔다고 보일러를 아낌없이 가동시켜 주신 덕분에 등 따숩게 잘 잤다. 친구는 잘 못잤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같이 TV 좀 보다가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을 먹고 씻었다. 그릇도 이쁜 것만 꺼내주시고, 반찬도 엄청 신경 쓰신 것 같아서 송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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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랑 어디갈까 궁리를 하다가 친구가 가기로 한 곳은 산림박물관. 가만히 보면 친구도 특이하다. 많은 장소 중 왜 산림 박물관이었을까. 정읍에는 벚나무가 많은데 저기 위에 보이는 길은 내가 고등학교 때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길로 버스타고 지나가다보면 별안간 외로워지고 내 신세가 처량해지고 그랬다. 내가 온 날 비바람이 많이 불어서 꽃이 많이 떨어졌지만, 사진으로 찍어놓으니 볼만한 걸.
순창에 있는 산림박물관으로 내장산을 삥삥 둘러 올라가는데 멀미가 날 것 같았다. 산림박물관에 도착했는데 무서울 정도의 정적이 흘렀다. 도시에 있으면서 그 정도의 정적을 느낄 일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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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별로 아는 것도 없으면서 박물관을 좋아하는 것 같다. 박물관에 갈 때마다 아... 내가 참 아는 게 많았으면 이 박물관이 더 재밌었겠지 싶지만, 그때 뿐이다. 저 산림박물관도 우리나라에 있는 산과 산맥 그리고 식물 등에 대한 정보가 많아서 유익하고 재밌었다. 식물에 관한 내용을 보니까 중학교 때 배웠던 게 생각나면서 다시 중학교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아주 잠깐 했다. 기대 안하고 갔지만 산림 박물관에서 "한지" 제조 과정도 봤는데 오 완전 몰입해서 봤다. 백두대간과 다른 산맥을 표시한 대한민국 지도를 (엄청 크게 되어 있어서 알기 좋았음) 보면서 내가 참 무식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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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낮 오후 3시쯤 배고파서 간 중국집은 참 한가했다. 이런 시골에서 이렇게 큰 중국집 운영하면서 생계유지가 가능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급스러운 중국집이었다. 짜장이랑 짬뽕안에 들어간 재료들도 매우 충실했다. 그런데 난 짜장면을 급히 먹다가 폭풍설사를 작렬했다. (아 드러 -_-) 어쨌든 먹을 때는 맛있었으니까. 양이 너무 많아서 남기긴 했지만.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서 기차역에서 기차를 한시간 정도 기다리면서 아픈 속을 두유로 달랬다. 맞는 시간대에 무궁화가 없어서 올 때는 무리해서 KTX 를 탔다. KTX  안에는 무궁화 열차에서 내 앞에 앉아있던 무지하게 무식하고 목소리 커서 귀고막이 터질 것 같은 아저씨 같은 사람은 없어서 좋았다. 그리고 1시간 이상 빠르고. 친구가 좀 가져가라고 해서 가져온 맥스봉을 먹으며 난 용산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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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고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집에와서 씻고 그날 밤에 난 많이 울었다. 아무리 내 친구의 어머니지만 그냥 내 친구 어머니가 너무 가여웠다. 자세히 말하면 친구네 집 상황을 너무 말하는 것 같아서 그렇지만, 집에 오니까 참고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서 누워서 많이 울었다. 친구도 그렇고 친구 어머니도 그렇고 참 인생이 허망하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었다. 그 때 다른 친구가 잘 지내는 문자를 절묘하게 보내서 답장 보내다가 간신히 울음을 멈추고 잠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부터는 몸살이 나서 조금 고생했다. 지금은 완쾌.


퇴직이후로 자유인이 된 것을 만끽하며 살았다. 이제 겨우 2주일 되었을 뿐인데 예전부터 집에서 놀았던 사람처럼 살고 있다. 지금 뭐 하냐고 물어보면 딱히 할말이 없는 소속없는 인생에 아직 마땅한 대책없이 지내고 있지만, 꽤 바쁘다.
4월 19일부터 20일까지는 정읍에 간 친구를 만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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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너무 늦장을 부리다가 원래 타려던 기차를 놓치고 다른 기차를 탔는데 거기서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난 영등포역에서 별로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 일부러 더 먼 용산으로 표 끊었는데, 영등포로 했으면 안 늦었는데.
용산에서 무궁화를 타고 자려고 하는데 앞에 앉은 무식하게 목소리만 큰 아저씨가 기차 타고 가는 내내 시끄럽게 해서 죽는 줄 알았다. 근데 워낙 질 나쁜 아저씨 같아서, 꾹 참고 자는 척 하고 신경도 안쓰이는 척 했다. 힘들었다. KTX 타면 2시간 10분인데 무궁화를 타니까 3시간 30분 이었다. 용산까지 가는데 우리집에서 1시간 걸리니까 총 4시간 30분이 걸렸다. 친구는 다음부터 기차말고 버스로 오라고 했지만, 버스는 더 피곤하고 기차타 버릇했더니 버스는 꼴도보 기싫어졌다. 평일에도 무궁화 열차 안에는 사람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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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빠가 니가 엄마아빠보다 낫다고 말했던 게 내가 정읍에 가면 친구가 차를 끌고 마중을 나와준다. 정읍역에 5시쯤 도착하여 보니 비가 꽤 많이 오고 있었다. 뛰어가서 차를 타니 친구 어머니가 시장 가서 뻥튀기 튀긴다고 같이 타고 계셨다. 인사를 하고 시골 시장으로 가서 뻥튀기를 튀겼다. 어렸을 때 그 소리를 들었을 때에는 심장이 떨어질 것 같고 가슴이 터질 것 같더니, 커서 들으니 그렇게 무서운 소리도 아니었다. 어렸을 때는 멀리서 뻥튀기 차 보이면 그 가까이로 지나가지도 못했는데... (난 큰 소리에 굉장히 취약해서 풍선 터지는 소리 운동회때 총소리를 엄청나게 무서워했다)
뻥튀기를 튀기고, 친구 어머니가 팥칼국수를 사 주셨다. 시장 안에 있는 식당이었는데, 역시 본토의 맛!! 고등학교 때 잠깐 전라도에 살면서 제일 좋았던 건 주말마다 먹던 팥칼국수. 서울에서 한다는 집에서 먹어봤지만, 본토의 맛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저 양 많은 게 단돈 3500원. 김치는 또 어찌나 맛있든지.
배터지게 팥칼국수를 먹고, 친구가 너 진짜 쌍화차가 뭔지 아냐고 물어봐서 모른다고 했더니 데려가 준 전통찻집. 드라마에서 나오는 진짜 맛없게 생긴데다가 계란 노른자 풀어먹는 차가 아니고, 진짜 한약재 많이 들어가고, 안에는 밤 알갱이, 대추 알갱이 등이 가득 들어간 맛있는 차 였다. 젊은 애들은 한약 같다고 못 먹는대지만 난 쌍화차 마시니까 소화가 쑥 되는 느낌나고 기분이 한 껏 좋아졌었다. 바깥에는 비바람 불고 따뜻한 찻집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랑 회포를 풀었더니 무궁화호 열차안에서 느꼈던 피곤이 다 가시고 즐거웠다.
롯데마트 들러서 친구랑 밤에 먹을 포도랑 맥스봉소세지(사랑합니다 맥스봉), 맥주 등을 사서 처음 친구네 집에 갔다. 손님 왔다고 보일러도 많이 틀어주시고, 자리까지 깔아놓아주셔서 진짜 감사했다.
친구가 밤에 생리통때문에 토하느라 왔다갔다하고.. 내가 날을 잘못잡은 것 같았다.
 
작년 1월 벌써 1년이 훨씬 넘은 일이지만, 내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친구가 어려운 결심을 해서 시골로 내려갔다. 난 가까이에서 살던 가장 친한 친구가 곁을 떠난거라 많이 심심하고 외로웠지만, 친구네 집에 가보니 거기에 내 친구가 없으면 정말로 친구 어머니가 너무 가여워서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내친구도 답답하겠지만 그래도 대단한 결심히고 친구의 상황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난 솔직히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꾹 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