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를 읽고

위로 2017. 7. 8. 18:26
그 후
국내도서
저자 : 나쓰메 소세키 / 윤상인역
출판 : 민음사 2003.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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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첫 직장에서 힘든 겨울을 보내면서,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를 읽었다. 아마 이 블로그에도 독후감을 올렸을 것이다. 당시 내 상태가 형편 없었기 때문에 그때 쓴 글은 읽어보고 싶지 않다. 아마 끔찍하게 못썼을 것이다.

  직장으로 인해 고통 받았던 당시 나는 히라오카를 불쌍히 여겼다. 그리고 부자집에서 태어나서 평생 직업을 가져본 적 없이 우아하게 사는 다이스케가 절대 미치요를 택할 리 없다고 확신하며 책을 읽었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지만. 


  30대하고도 중반이 된 지금 다시 읽으니, 히라오카 같은 놈에게는 아무런 동정이 가지 않는다. 이 소설에서 가장 딱한 사람은 바로 미치요다. 대학시절 미치요와 다이스케는 서로 사랑하고 있었지만, 다이스케는 자신의 감정을 애써 외면하며 친구인 히라오카와 미치요의 결혼을 적극 돕는다. 오빠도 엄마도 갑자기 죽어 의지할 곳 없던 미치요는 결국 사랑하지도 않는 히라오카와 결혼하고 불행한 삶을 산다. 몇년이 지나 도쿄에서 다시 만난 미치요와 다이스케는 함께하기로 하지만, 이미 미치요는 몸이 약할대로 약해진 상태이고, 다이스케는 가족에게 의절당하고, 남편인 히라오카는 아픈 미치요를 다이스케와 만나게 해주지 않는다. 


  과거에는 불륜에 빠지는 사람들을 혐오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남녀가 서로 오랜 기간 사랑하다, 어느 한쪽이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져 헤어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우리는 실연한 사람을 보며 안타까워하며 동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변심하여 이별을 통보한 사람을 죄인이라 비난할 수는 없다. 사람의 감정에 벌을 주고, 상을 줄 순 없으니까 말이다. 사람이 평생 옳은 선택을 할 수 없고, 언제나 마음이 한결같을 순 없을 것이다. 설령 사회적으로 큰 도덕적 의무가 요구되는 결혼을 한 후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기본적으로 인간을 혐오하는 작가의 태도가 소설 군데군데 드러나서, 나쓰메 소세키가 평생 얼마나 외롭게 살았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그래서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나쓰메 소세키 뿐이구나. 하는 생각도 이 소설을 읽으며 자주 했다. 다만, 난 나쓰메 소세키 처럼 쓰지 못한다. 이렇게 대신 내 마음을 표현해주는 작가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아마도 이게 내가 소설을 읽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나도 표현하지 못하는 내 마음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읽고, 생각할 기회를 갖는 것 만으로도 내 인생은 훨씬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믿는다.


  분명히 이 소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편소설 중 하나인데, 다시 읽으니 처음 읽는 것 처럼 새로웠다. 특히 다이스케가 마침내 미치요에게 당신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장면은 내 기억에는 완벽하게 존재하지 않는 장면이었다. 처음 읽을 때는, 다이스케가 자신이 가진 특권 전부를 포기할지 안할지 그 부분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오히려 다른 부분에는 집중을 안했던 것 같다. 이렇게 대충 읽어놓고, 제일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가 '그 후' 라고 자부했던 내가 좀 부끄러웠다. 


그는 스스로가 정당한 길을 걸었다는 자신이 있었다. 그는 그걸로 만족했다. 그 만족을 이해해 줄 사람은 미치요뿐이었다. 미치요 이외에는 아버지도 형도, 그리고 사회도 세상 사람들도 전부 적이었다. 그들은 시뻘건 불꽃 속으로 두 사람을 밀어 넣고 태워 죽이려 하고 있었다. 다이스케는 말없이 미치요를 부둥켜안고 그 불길이 빨리 자신을 태워버리기를 간절히 바랐다.


-p. 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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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나츠메 소세키

민음사


나쓰메 소세키 책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가 최고 많이 번역되어 나와 있는 것 같은데, 왠지 또 그 책 부터 시작하긴 싫어서 아무 이유없이 선택한 책이 '그 후' 이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보다는 훨씬 더 뒤에 쓰여진 책으로 그 때 문체와는 또 다른 묘미가 있다고 하는데 난 나쓰메 소세키 책은 이게 처음이라서 그런 것 까지 비교할 주제는 못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 다이스케 에 대한 질투심과 부러움을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사업하는 아버지 밑에서 아무 하는 일 없이 하인 거느리고 책 읽고 산책하고 낮잠 자고 하는게 하루 생활의 전부인 30살 다이스케.
책의 뒷부분 서평을 보니 그 사람 의견은 다이스케를 통해 나쓰메 소세키는 그 때 당시 근면, 성실 만을 외치며 영국 등 서양 열강들을 쫓아 일본도 잘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당시 가치관에 환멸을 느끼는 지식인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는데, 난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그 서평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 90% 이상)
단, 읽다보면 나쓰메 소세키는 다이스케 라는 인물에 대해 비난하고 비웃으려고 그런 인물을 만든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고 무작정 그 인물에 대해서 옹호하고 있지도 않고 그렇다.
다이스케라는 주인공에 부러움을 느끼면서 재수 없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여러번 공감하기도 했는데 가장 이해가 되고 공감이 갔던 건 아무리 화를 내려고 해도 화를 낼 수 없는 성격, (진짜 꼴같지 않게) 자기 이외에 모든 것은 낮게 보는 거나, 자신의 주변에 필요 이상으로 예민한 점 등등.

이 소설은 대학 때 친구 히라오카가 오사카에서(오사카였나 교토였나 하여튼 저쪽 간사이 지방) 일하다가 빚만 잔뜩지고 도쿄로 올라와선 다이스케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시작된다. 그렇게 서로 왕래하다가 다이스케가 히라오카의 부인 (대학 때 부터 알고 지내던) 미치요를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
앞서 말한 것 처럼 다이스케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공감하긴 했지만, 이 다이스케의 대학 때 친구 히라오카는 진짜 눈물나도록 불쌍하다. 다이스케에 대한 자신의 열등감을 어떻게든 감추려고 하는 모습이나, 고단하게 사는 모습이나 거기에 심지어 지 부인도 뺐기잖아. 하긴 불쌍한 걸로 치면 미치요가 100배는 더 불쌍하긴 하지만. 음... 아닌가. 그래도 다이스케에게 사랑은 받았으니까 히라오카가 더 불쌍할 수도 있겠네.

난 소설, 영화 등에 있어서는 혐일에 가까울 정도로 일본을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는데, 나쓰메 소세키는 정말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필력의 소유자 인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부분을 소상히 표시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여기에 쓰지는 못하겠지만, 정말 어떻게 이 정도로 심리묘사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봤던 부분이 한 두군데가 아니다. 그래서 이 소설 읽으면서 나쓰메 소세키 책을 꽤 여러 권 사놓고 지금은 산시로를 읽고 있다. 산시로, 그 후, 문 이 3개는 3부작으로 똑같은 인물이 나오진 않지만 대학을 다니는 산시로 - 30살의 다이스케 - 친구의 부인을 빼았아 죄책감에 시달리며 사는 중년 남성 이런 이야기가 된다고 한다. 나는 지금 대학 시절의 산시로를 읽고 있는데 '그 후' 보다는 재미 없다.; 이것도 다 읽으면 여기에 쓰긴 하겠지만.

아 그런데 이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말이다. 인지도에 비해서는 읽기 편한 책은 아닌 것 같다. 지금 읽고 있는 산시로는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에서 출판한 책인데 약간 애매모호한 단어나 지명 등은 주석을 달아서 그 때 당시 상황이랑 연계해서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에 훨씬 읽기 편리하고 좋은데 이 책은 그런 게 하나도 없다.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건가. 물론 거의 모든 소설책이 그렇긴 하지만, 저 시리즈로 된 책을 많이 읽었지만, 막 다른 출판사 번역본에 비해 뛰어나다는 생각이 드는 시리즈는 아닌 것 같다.(인지도에 비해서!!) 뭐 그래도 번역하고 출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중간에 다이스케가 미치요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미치요는 울면서 왜 대학 때 저를 버렸지요? 하고 묻는다. 원래는 둘이 좋아하다가 다이스케가 친구인 히라오카와의 결혼을 적극 주선하여 결국 결혼하게 된 건데, 이 다이스케라는 놈 정말 못난 놈 아닌가. 그런데 난 또 갑자기 궁금해졌다. 혹시 날 스쳐 지나간 사람 중에서 그 때 확실히 날 잡을 걸 하고 가끔이라도 후회하는 남자가 일생동안 한 명이라도 있을까 없을까 하는 것에 대하여 크크큭. (아 구리다 이런 생각) 이런 생각을 하니 급 우울해졌는데, 아무래도 예전에도 앞으로도 한 명도 없을 것 같다.
'그 후' 같이 훌륭한 소설에 이따위 감상평을 쓰고 있으려니 나쓰메 소세키에게 또 죄송하다.

아래 구절은 책을 다 읽고 덮은 후에도 계속 생각이 나서 적어둔다.

P.313

다이스케는 생기가 넘치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한참 동안은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이윽고 그 아름다움을 암암리에 무너뜨리고 있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생각을 하자 슬퍼졌다. 그는 오늘도 그 아름다움의 일부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기 위해 미치요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