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백수의 심정.

일상 2010. 8. 20. 13:07

대학을 졸업하기 전 서부터 계속 일한 나는 솔직히 청년 백수가 어떤 심정인지 몰랐다. 뭐 6개월동안 일했던 곳은 계약직이라 빨리 정규직으로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힘든 건 있었지만, 그래도 업무를 하다보면 그런 거 다 잊혀지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집에서 하루종일 있으면서 모니터 쳐다보는 기분을 알 수가 없었다.
회사를 관두고 그런 기분을 느끼고 있는데 이런 기분도 어느정도는 고비가 있고 그 고비가 지나가면 아무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불행히도 고비가 왔다.
생각보다 세상에는 일자리가 없고, 있다 하더라도 날 필요로 하는 자리는 없다. 솔직히 회사 다닐 때 닥친 일 그때 그때 잘하고, 시키는 일도 마다 않고 스트레스 팍팍 받으면서도 내색 안하고 회사생활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모양이라니.
요즘 들어 내가 헛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그렇게 큰 일이 아니고 정말 원대한 꿈도 아닌데 이정도 밖에 안되나 하는 생각도 들고, 면접에 갔다와서 떨어지면 내가 그리 별로인가 하는 자괴감도 들고 그런다.
전 회사를 관둔 건 큰 후회는 없지만, 하도 면접서 떨어지다보니 그나마 날 면접에서 붙여준 고마운 회사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왜 내가 그렇게 일 안하게 생겼나? 혹은 못 미더운가? 이런 나쁜 회사들.
정말 찜통 같은 날씨에 어제도 면접을 보고 왔는데 사람 병신 만드는 느낌 드는 공채 면접 분위기도 아니고 뽑는 사람이랑 나랑 1:1로 하는 면접이고 그럭저럭 잘 대답을 했는데 왜 왜 연락이 안오는거니!
회사를 관두고 펼쳐질 시간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 생각은 했는데 이 전환점을 넘기가 좀 힘이 든다. 훨씬 불행해지든지 그래도 만족하면서 살든지 둘 중 하나일텐데. 내가 원하는 건 무지하게 행복해 지는 게 아니다.
그냥 그래 그래도 집에서 노느니 지금 회사 다니는 게 낫겠지. 하는 생각이 드는 직장을 갖는게 내 꿈이란 말이다. 월급에 대한 욕심도 없다. 그런데 이렇게 너무 작은 걸 바라는 모습이 오히려 무기력해 보이고 의지없어 보이고 그런걸까?
여하튼 지독하게 더운 날씨에 면접 본답시고 발에 물집 잡혀 가면서 치마 입고 돌아다녔는데도 아무런 수확이 없으니 힘이 빠진다. 아 정년 과외 선생이 내 길인가? 으아아아.
28살에 무슨 내세울만한 능력 혹은 기술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이렇게 손놓고 마냥 놀아도 될만큼 집이 넉넉한 것도 아니고, 진짜 20살 때의 꿈을 찾아서 지금부터라도 대학원 들어가서 내 앞날을 바꿀까 하는 결심을 했다가도 그만한 용기도 없다.
아 초라하다. 그리고 오늘 날씨도 덥기 그지 없구나. 백수라 눈치보여서 에어컨도 절대 안틀고 땀만 줄줄 흘리고 있다.


요즘 과외하면서 그냥 저냥 지내고 있지만, 진짜 괜찮은 자리가 나오면 그래도 이력서라도 넣어봐야지 하고 몇군데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한 군데 진짜 괜찮은 곳을 썼지만 난 떨어졌다. 그 이력서 때문에 송도에 한번 가봤는데 가보고 정말 놀랬다. 완전히 망한 스멜이다. 내가 보기엔 송도가 겁나 고급 아파트들 많이 들어와서 분양 되면 대성공일 거 같다. 국제 업무지구? 풋. 그나마도 아파트까지 다 지어서 복작대려면 20년은 족히 걸리게 생겼던데.
그리고 송도에 가면서 난 또 한번 느꼈다. 인천이 무지하게 크다는 것을. 우리집은 그나마 바로 가는 버스가 있는데도 1시간을 꼬빡 갔다. 참 멀었다. 서울도 크다고 느꼈지만 서울은 서울 안에 지하철이라도 잘되어 있지 인천은 이거 버스도 무지하게 돌고 인천 지하철 역도 몇 개 없고.

송도를 가는데 어렸을 때 교회에서 억지로 끌려갔던 송도유원지가 보였다. 1박2일 인가로 갔던 거 같은데 비오는 추운 날씨에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 그리고 6살이었던 동생은 텐트에서 하룻밤을 잤다. 잘 씻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심약한 체질의 나와 동생은 교회에서 물속에 들어가라고 해서 하는 수 없이 물속에 들어가기도 했다. 물은 또 어찌 그렇게 똥물이었는지. 결국 나와 동생은 그 수련회를 다녀오자마 앓아 누웠고, 그 똥물이 귀에 들어간 뒤로 내 오른쪽 귀에서는 누런 고름이 줄줄 나왔다. 그때 귀가 아파서 어찌나 고생했는지. 아무래도 내가 학교 다닐 때도 수련회나 수학여행 같은 거 싫어하게 된 계기도 교회에서 끌려간 그 수련회의 영향이 큰 거 같다.

저번에 미즈키님도 말했지만 이력서 쓰다보면 정말 황당한 거 적어내라는 회사들이 많은데 키와 몸무게 혈액형은 예사고 아버지 출신 학교 아버지 직업쓰라는 회사도 꽤 된다. 면접 가서도 아버지 뭐하시냐 물어보는 경우도 많았다.(근데 이건 모든 어른들의 공통질문인 거 같다) 그리고 대학 졸업 직 후 썼던 어떤 이력서에는 지인 중 영향력 있는 사람을 3명 이상적어서 내라는 곳도 있었다. (회사랑 직급 쓰는 란 까지 있었다.) 드럽고 치사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나마 내가 아는 사람 중 좀 잘나가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어서 적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런 회사에 그렇게 적어냈나 싶지만 뭐 나름 처절했기 때문에.

몇 군데 면접을 갔을 때 한 곳은 공고에는 시청역 근무라고 되어 있었는데 알고보니 시청역 근무가 아니었고, 한 군데는 그 때 당시 뽀록으로 나온 내 토익점수를 보고 미국 사람들이랑 메신저로 대화하면서 일을 하라는데 저 정말 영어 못해요. 라고 말을 했음에도 나보다 토익 점수 낮은 사람도 다 잘한다고 그래서 황당했다.(뭐 나보도 토익 낮은 애들도 기본으로 다 어학연수는 다녀왔으니까 그렇겠지만 난 솔직히 말하면 학교 수업 이외에 외국인이랑 대화해 본 경험이 지금까지도 전혀 없다)  그회사가 더 황당했던 건 미국 업무시간에 맞춰서 일하라고 했다는 거다. 미국 업무시간을 계산해보니 대략 새벽3시에도 일을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길래 됐습니다 하고 나왔다.

대학 다닐 때 혹시나 하고 써냈던 이력서 후로 아무 연락이 없어서 역시나 이번에도 떨어졌구나 했는데 겨울방학이 되서야 면접보러 오라고 해서 7호선 학동역까지 어떤 건설업체를 간 적이 있었다. 가기 전에 그 건설업체에 대해 좀 알아봤는데 좀 이상한 회사 같아서 망설이다가 면접을 갈까말까 고민하는데 엄마가 그 회사가 좋건 나쁘건 넌 꼭 취직을 해야만 한다고 무조건 가라고 내 등을 떠미는 바람에 빈정이 상해서 학동역에 내렸는데 맙소사 학동역까지도 1시간 40분 가량 걸리고, 학동역에서 내려서 마을버스까지 타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총 소요시간 2시간 10분) 여기는 만약에 와서 다니라고 해도 못다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면접에서 물어보는 이야기가 여기서 일하려면 남자직원들한테 커피 타야 한다. 왜 이렇게 전학을 많이 다녔냐? 아버지 성격이 이상하신가보다. 하나 같이 내 자존심을 긁는 소리만 했다. 집으로 와서 그 회사 진짜 미친 회사라고 욕을 하는데 우리 엄마는 그래도 가라고 해서 더 열이 크게 받았던 기억이 난다. 결국 난 엄마가 돈 벌어오라는 성화에 못이겨서 바로 아르바이트라도 하겠다고 여의도까지 아르바이트를 다녔다.

대학 때 유명한 회사 인사담당 직원들이 와서 말하는 면접 비법 이런 거를 한번 들을 일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개소리였다. 아직까지도 생각나는 건 면접 갔을 때 왜 면접관들이 자존심 상하는 질문을 하는지 아냐. 그건 지원자가 얼마나 마인드 컨트롤이 되는지 보려고 그러는 거다. 라고 강의 하더라. 그걸 들으면서 난 속으로 비웃었다. 그 유명 회사 인사담당 사람의 얼굴에 "오만함" 이 가득했다. 

쓰다 보니 난 정말 이 사회에 불신이 가득한 거 맞는 거 같다. 예전에 내가 정신상태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싶어 학교에서 운영하는 심리상담소에 가서 상담을 한 번 받았는데 어떤 테스트를 하더니 사회에 대한 불신감 수치가 교도소에서 수감 중인 사람들 만큼 높다고 나한테 엄청 겁을 줬었다. 난 아직까지도 나름 전문가였던 그 아저씨가 계속 내가 상담받게 만들려고 조금 과장해서 말한 거라고 의심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별 거 아닌 것도 큰 의미를 둬서 말을 하는 부분도 꽤 있으니까.
새벽이 되어 뻘소리가 길었다. 내일 수영을 가야 쓰겄는가 말아야 쓰겄는가 고민 중이다. 술도 안마셨는데 술취해서 쓴 거 같은 이 포스팅을 내일 아침에 본다면 무척 쪽팔리겠지만, 그래도 포스팅 하고 이제 난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