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욕망의 변주곡
국내도서
저자 :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Anton Pavlovich Chekhov) / 이항재역
출판 : 에디터(editor) 2012.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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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전 졸업을 앞두었음에도 정규직 취업에 실패한 나는 2007년 2월 1일부터 어느 은행 소속의 연구소에서 계약직으로 일했다. 아직 비정규직법이 발의 되기 전이라 연구소 내에는 많은 계약직들이 근무하고 있었는데 나는 연구소의 계약직 중에서도 가장 낮은 계약직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관계가 비좁았던 난 누군가에게 조언 한마디 듣지 못하고 갑자기 사무직 근로자가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몰라서 저지른 황당한 일도 꽤 많았던 거 같다. 그 사람들은 날 보면서 아마 '역시 쟤는 여기 있는 우리들보다 질이 떨어지는구나..'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 사람들은 나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안했는데 나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다. 연구소의 사람들은 듣기만 하고 실제 접한 적은 한 번도 없는 저 높은 계급의 사람들이었다. 그 곳의 사람들은 다들 악의 없고 친절하긴 했지만 매일 느끼는 그들과 나 사이의 어마어마한 괴리 때문에 난 별안간 슬퍼지기도 했고 분노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렇게 내 자존감은 점점 바닥을 향했다. 

  내 업무는 높으신 연구소 분들이 하지 않는 일이었다. 감히 그 분들 손에 더러운 토너가 묻으면 안되니 토너도 갈아주고, 수고롭게 무거운 다과와 음료수를 직접 구매할 수 없으니 지하 매점가서 다과랑 음료수도 사놓고, 우편물도 분류하고, 도서관에 책 반납하고 뭐 그런 일들 말이다. (당시 경험 때문에 난 지금도 복사기, 프린터의 웬만한 고장은 혼자 뚝딱 고치는 편이다.) 난 초등학교 5학년 짜리도 아무 문제 없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해 별 불만도 없었다. 말했다시피 자존감이 워낙 바닥을 치던 시기였으니 말이다. 오히려 지금 하는 일이 나한테 딱 맞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어느 집단에 좀 오래 있다보면 그 곳에 속한 사람들을 분류하게 되고 나름대로 각 집단의 사람들을 정의하며 심지어 가치판단까지 하게 되는 법이다. 나쁜 버릇이지만, 인간으로 이 세상에 사는 이상 어쩔  수 없이 그리 된다. 몇 개월 정도 지나니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을 발견했고, 눈여겨 보게 되었다. 그 사람의 책상 위에는 나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피규어가 주르륵 세워져 있었고, 그 사람이 제출하는 직원 복지비로 청구할 도서 구입비 영수증은 대부분 일본 현지에서 산 만화책의 영수증 이었다. 그 직원은 남한테 자기 일을 시키는 법이 없었는데, 워낙 책임감이 투철해서 그랬다기 보다는 남에게 쉽게 부탁을 못하여 결국 자기 혼자 모든 일을 하고 마는 것 같았다.

  어느 날 그 사람이 어떤 종이와 칼을 들고 내 책상에 왔다. 그는 엄청 망설이며 이 프린트물은 자기가 쓴 보고서 설명회 초대권인데 자기는 아무리 해도 똑바로 못 자르겠다며 시간나면 잘 좀 잘라달라고 했다. 종이와 칼을 든 그의 손을 보니 너무 크고 손가락이 둔해보여 예리한 칼질을 못할 것 같기도 했다.

  시위대를 뚫고 퀵서비스 기사가 건내주는 서류를 들고 오라는 심부름도 아무 문제 없이 수행하던 내가 그 정도 칼질을 못할 리가 없었다. 받자마자 다 해서 가져다주니 그 사람은 너무 황송해 하며 고마워했다. 썩 잘 잘리지도 않았건만 어떻게 이렇게 똑바로 칼질을 할 수 있느냐며 진심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고 나의 칼질 실력에 대해 거듭 칭찬했다.

  그렇게 안면을 튼 뒤로 그 사람에 대해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번째는 그 사람은 다른 연구소 직원들과는 달리 인천 어딘가에서 장사하는 부모님을 두었다는 것과 (그 연구소 근무하는 사람들 아버지는 대학 총장이거나, 국회의원, 어떤 회사 사장이거나, 뭐 기타 등등 이었음) 두번째는 서울대 모과를 수석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학업을 지속하지 않고 그 사람 기준으로는 매우 누추한 그 곳에 취업을 한 괴짜라는 것 이었다.

  별 거 아닌 일에 심하게 고마움을 표하고, 내 나름대로 별로라 판단한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않는 그 사람이 계약직 근로자들을 회집에 데려간 적이 있었다. 워낙 돈 잘 버는 사람들이고 연구소에 예산이 넘쳐나서 그런 식으로 비싼 밥을 얻어먹는 일은 흔했다. 그런데 그 회식은 다른 때와 달리 마음이 참 편안했다. 내 글쓰기 실력으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연구소의 다른 사람들에게 느꼈던 우리를 향한 은근한 무시 같은 게 없었달까. 기회다 싶어 회집에서 궁금한 걸 물었다.

  "서울대 모과 수석 졸업하셨으면 더 공부해서 교수하거나 재경부나 한국은행도 갈 수 있지 않아요? 왜 여기에 취업하셨어요?"

  "저는 놀고 먹으려고 여기 취업했습니다. 여기 사람들 다 편히 일해요. 한국은행가면 야근하고, 재경부 가면 일 빡세고 공부는 더 하기 싫고, 그래서 전 여기서 놀고 먹으면서 편히 살 거예요."

  연구소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이 국가에 굉장히 중대한 일이며 또 자기네들만이 그런 우아한 일을 할 자격이 있는 듯 행동하고 말할 때가 있었다. 그들은 창구 '애들'이  하루종일 하는 일이라곤 대출 서류에 도장 찍는 것 밖에 없다며 비웃었다. 그런데 연구소에서 가장 잘난 사람일 수도 있는 사람이 대놓고 연구소 사람들 편히 놀고 먹는다고 하니 어쩐지 통쾌했다. 

  그 해 7월말 난 정규직에 취업했고, 당연하게도 연구소의 사람들 중 그 누구와도 관계를 이어가지 않았다. 10년 전 연구소 월급 통장으로 만들었던 은행 통장은 현재 엄마 보험금을 관리하는 통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며칠 전 보험금으로 가입했던 예금의 만기가 다가와 오랜만에 은행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런데 사이트 게시판에 10년 동안 잊고 있었던 그 사람의 이름이 있는 것이 아닌가. 클릭해서 확인해보니 어떤 보고서였고, 보고서에 적힌 이메일 아이디가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 이름인 것을 보아 틀림없이 내가 기억하는 그 사람이 쓴 보고서가 맞았다. 이 발견 때문에 그다지 즐겁지 못했던 10년 전을 회상했고, 읽은 지 좀 오래된 체호프의 '바다에서' 라는 단편소설을 떠올렸다.


  스스로를 낮추는 사람은 오히려 가장 고귀한 사람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소설의 주인공인 젊은 선원은


  사람은 대개 추악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 이따금 선원은 세상 그 누구보다도 더 추악하고, 심지어 가장 추잡한 짐승보다도 더 추악해진다. 짐승은 본능을 따르기 때문이라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다. 인생을 잘 모르는 내가 틀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원들에겐 그 누구보다 자신을 미워하고 욕할 이유가 많은 것 같다. 언제고 돛대에서 떨어져 파도 속으로 영원히 사라질 수 있고, 물속에 빠지거나 거꾸로 떨어질 때만 신을 아는 사람들에게 도대체 뭐가 필요하겠는가?

- p. 9~10


  라고 말하며 나를 포함한 동료 선원들이 짐승에 가까운 추악한 사람들이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배의 선원들은 승객 중 고매해 보이던 영국인 신부나 점잖던 신혼부부의 남편에 비하면 순수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이었다. 주인공인 나는 다른 선원 한명과 함께 신혼부부가 있는 선실을 훔쳐보다 그들의 어떤 행동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아 엿보기 위해 뚫어놓은 선실 벽의 구멍에서 황급히 눈을 떼버리고 만다. 옆에 있던 선원은 넌 이런 걸 보기엔 너무 어리다며 주인공을 다른 곳으로 끌고 간다.


  10년 전 연구소의 그 사람을 보며 느낀 것도 이와 비슷한 감정이었다. 그는 본인은 지금 놀고 먹고 있으며 나 뿐 아니고 다른 사람도 다 여기서 놀고 먹는다고 말했지만, 오히려 그 사람은 보고서를 제일 많이 쓰고 웬만한 일은 혼자서 다 하는 연구소에서 제일 '안'놀고 먹고 있는 사람이었다.

  사이트에서 그 사람의 이름을 발견한 뒤 반가운 마음에 10년 전에 연구소에서 잡일을 하던 저에게 친절 배풀어 주신 것 지금이라도 감사드린다고 메일을 보냈다.

  예상했던대로 그 사람은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고, 역시 예상대로 너무 친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