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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연휴 동안.

일상 2013. 2. 11. 23:47

이번 설 연휴 때는 이모댁에 다녀왔다. 친척집을 갈 때마다, 또 친구들에게 소식을 들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 이 세상에는 행복한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결혼소식을 들어도, 결혼한 친척의 소식을 들어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내가 남을 별로 안 부러워 하는 이유도 세상에 진짜 행복한 사람이 없어서가 아닐까. 

다 알고보면 문제가 있고 또 풀지 못한 숙제가 있고. 

친한 친척언니들과 열심히 이야기하고 맛있는 것도 실컷 먹고 왔지만, 더 우울해졌다. 

나는 하루하루 늙어가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스무살 때부터 지금까지 별로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이 계속 현상유지를 하고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연휴기간동안 극장에서 봤던 건축학개론을 봤다.

난 극장에서 건축학개론 보면서 울었다. 특히 극중 서연이가 첫눈오는 날 승민이 기다리는 장면에서 말이다. 

나는 극 중 서연이 처럼 예쁘지도 않고 인기도 없었지만, 서연이 한테 심하게 감정이입을 했었다. 서울에 올라와서 느끼는, 어쩌면 태어나서 처음 실제로 느껴보는 부의 계급(?) 격차, 나만 빼고 다 세련된 것 같아 보이는 여자애들을 보면서 느끼는 열등감 등등. 

좋아하는 남자에게 꺼져줄래. 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일까.  

뭐 나도 지금 생각해보면 제일 좋아했었던 남자에게 저보다 더 심한 말 들었던 것 같은데. 의외로 난 다 잊었나보다.

당시에는 내가 왜 이런 말까지 들어야 하는 것인가 하고 억울했는데 그 남자 입장에서는 나한테 오만정 다 떨어졌을 수도 있겠구나 싶고. 그래서 그런지 이제와서는 아무런 원망도 없고 밉지도 않다. 오히려 서연이 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척 찾아가서 어떻게 사는지 지켜보고 싶고 그렇다.  

어렸을 때 나는 사랑받을만한 구석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여자애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스무살이니까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도 누가 날 좋아하겠어 하는 생각으로 학교 다녔던 것 같다. 

영화긴 했지만 불행해진 서연이를 보면서 기분도 별로 좋지 않았고, 승민이는 부잣집 딸래미랑 결혼해서 결국 한국 뜨고. 이거 참 어떻게 모면 여자 입장 전혀 배려하지 않고, 남자의 판타지만 충족시키는 영화 인 것 같기도 하고. 

그래놓고 서연이한테 썅년? 참내. 

흠... 건축학개론은 500일의 써머 만큼이나 나한테는 좀 여운이 길었다. 

이터널 선샤인은 이러한 이유로 영화 다보고 나서 헤어나오지 못할까봐 아직도 시도조차 못하고 있다. 

진짜 진짜 좋아하는 남자가 다시 생기고 다신 헤어지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만 슬픈 연애영화를 보든지 해야할 것 같다. 의외로 꽤 충격을 받는다. 그런 내용에. 예전에 비커밍 제인 봤을 때도 그렇고. 


내일은 출근. 

역시나 우울하다. 요즘 나는 회사에서 얄밉게 일하고 있다. 하지만 일주일 내내 모니터를 번갈아가면서 계속 봤더니 아직도 오른쪽으로 목을 돌리면 아프다. 연휴 내내 쉰다고 쉬었는데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니깐 난 다음주에도 그냥 몸사리면서 일할거다. 저번 사건을 계기로 더더욱 나를 챙겨야 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아마 윗사람 눈에는 다 보이겠지? 내가 이렇게 요령피우면서 일하는 거. 

하지만, 내가 있고 회사가 있는 거지. 회사를 위해 몸받쳐서 일할만큼 난 미련하지도 않고 그러기엔 난 이미 직장생활도 할만큼 했고. 

또 생각해보면 난 애사심이라는 걸 가져본 적 자체가 없구나. 첫직장때도 그랬어. 이제 침대에 누울 시간. 다음주도 잘 버텨보자.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