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크리스마스 

  요 근래 매년 크리스마스 쯤 만나던 (남자인) 친구가 있었다. 올해는 그 친구한테도 메리크리스마스라는 형식적 메시지 조차 없는 정말 조용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이틀 뒤면 내 생일. 매년 별 거 없었다. 아마 난 죽을 때까지 이럴 것 같다. 나는 누군가와 이 정도면 많이 친해졌고, 상대방도 나를 진짜 친구로 받아들여주겠지? 라고 착각하는 병에 걸린 것 같다. 이런 애정결핍적 행동과 태도가 스스로 짜증이 나서 날이 갈수록 사람을 멀리 하게 된다.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이 나 없는 곳에서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길 바랄 뿐이다. 27일 내 생일에는 가족 제외한 누구한테라도 축하한다는 말을 단 한번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 내 생일은 언제나 회사에서 제일 바쁜 시즌이라 생일답게 보낸 적 거의 없기 때문에 크게 의미부여 안하지만, 2016년은 개인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해 라, 혼자서라도 의미깊게 보내고 싶다.

2.  사무실 이전

  사무실 이전이 드디어 끝났다.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난 사무실 이사도 가정집 포장 이사처럼 그날 아침에 다 싸고 옮겨주고 정리까지 해주는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나랑 막내만 죽어라 짐싸고, 죽어라 전화하고 일했다. 걔랑 전우애 같은 감정을 느꼈다. 어쨌든 끝났고, 나는 가산디지털단지 내 수많은 아파트형공장 중 한 건물 안의 한 사무실에 자리를 잡았다. 인천에서 비정상적으로 멀었던 성수역에서 가산디지털단지역으로 사무실이 이전한 덕분에 출퇴근시간이 약 90분 줄었다. 엄청나게 힘들었지만, 그나마 보람 있다. 만약에 2년 뒤 여기 계약 연장 안하고 또 이사간다고 하면 정말 심각하게 퇴사를 고민할 것 같다. 사무실 이사는 일반 가정집 이사와는 차원이 다르더라. 우리집은 이사만 한 15번 정도 했는데, 15번 이사하는 동안 이번 사무실 이사 처럼 힘든 적은 한번도 없었다. 이사를 토요일에 해서 어쩔 수 없이 토요일에도 출근했는데, 휴일 근로 수당 같은 것도 하나도 없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심하게 몸살이 나서 월요일에 간신히 일하고, 화요일에는 도저히 거동이 불가능할 정도라 결근했다. 할머니 체력인 나는 평소보다 조금이라도 힘든 노동을 하면 무조건 탈이 난다. 나같은 체력의 소유자는 규칙적으로 살 수 밖에 없다.

 

3. 내 자리

  나는 언제나 딸린 짐이 많은 편에 속한다. 이번에 이사하면서 내 짐만 세 박스가 나왔다. (다른 직원들은 보통 한박스) 짐을 줄이려고 회사에서 쓰던 컵과 커피 드리퍼, 원두, 우롱차잎, 커피 필터, 잎차용 필터를 집으로 가져왔다. 아침에 커피를 내려 먹는 것이 내 유일한 낙이라고 할만큼 2008년 부터 쭉 아침에 원두커피를 마셨지만, 요즘 나오는 아메리카노 믹스가 워낙 훌륭해서 이제 그렇게까지 불편하게 직접 내려 마실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컵은 회사 싱크대를 열어보니 아무도 안 쓴 것으로 보이는 컵이 있어서 그냥 그 컵을 사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리 짐을 줄여도 내 왼쪽에 있는 서류 들은 정리할 수 없었다. 안쓰는 파일이 하나도 없이 다 수시로 꺼내보는 것들이라.. 어쩔 수 없다.

 


  회사를 워낙 많이 옮겨 다녀서, 내 자리 사진을 웬만하면 남겨 놓는 편이다. 위 사진은 성수동 사무실에 있을 때 내 자리다. 지금 가산동에도 거의 똑같이 정리해놓았다. 우리 사무실에서 내 컴퓨터가 제일 후지고, 모니터도 나만 유일하게  4:3 비율 모니터를 쓴다. 근데 뭐 상관 없다. 일하는 데 아무 문제 없다. 난 어차피 오피스 패키지 외 다른 프로그램은 하나도 안쓰니.

 

4. 고독한 삶

  12월 10일에 너무 우울하여, 혼자 산책을 나섰다. 하루종일 늘어져서 TV 보다, 책보다, 음악듣다, 석양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삶도 그리 나쁘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가 생일인데 뭐 필요한 거 없냐고 나에게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요즘 필요한 게 없다. 아니, 내가 갖고 싶은 것 중에서 남이 나에게 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게 맞는 말이겠지. 내가 간절히 원하는 건 인간의 힘으로 안되는 것들이다. 그래서 너무 슬프고, 자주 좌절한다. 교회에서 기도할 때는 당연히 하나님께서 내 맘을 알고 들어주리라 확신하지만, 요즘들어 부쩍 마음이 약해진다. 의심하면 될 것도 안되는 건데.

 

 

 

 

  이 동네 살면서 셀 수 없이 자유공원에 자주 갔지만, 비가 억수로 오던 어느 여름날 이후 이렇게 사람이 없는 자유공원은 처음 봤다. 찬 겨울 바람을 얼굴에 맞으며, 추운 바다 속으로 야속하게 사라져가는 태양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는 그 순간 인천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느낌이었다.

 

5. 건강

  아직 감기 몸살이 다 낫지도 않았는데 화요일에 받아놓은 약이 떨어져 어제 병원에 가서 2시간을 대기했다. 정말 지루해 죽을 뻔 했다. 너무 심심해서 신문도 봤다가, 핸드폰도 보다가, 너무 심심해서 혈압도 쟀다. 혈압이 최고 87 에 최저 54 가 나왔길래, 네이버에서 저혈압에 대해 찾아봤다. 몇 년 전 신문에서 의사가 고혈압보다 저혈압이 위험하다는 건 완전히 잘못된 의학상식이라고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어서, 난 저혈압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안쓰고 산다. 네이버에서 보니 저혈압인 사람들의 일반적인 증세는 만성피로 라는데, 정상 혈압인 사람들의 일상은 나보단 훨씬 덜 피곤하고 활력이 있는 모양이다. 나는 평생 저혈압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현재 내 상태가 피곤한지 어쩐지도 모른다. 다만, 남들보다 쉽게 피로하고 지치는 게 운동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체질적인 것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근데 뭐 이런 취약점이 있는데도 운동 안하고 체력 키울 생각 안한 건 100% 내 잘못이다.

 

6. 엄마의 치료

  내가 엄마에게 감기몸살을 옮긴 것 같다. 암환자는 다른 병에 걸리지 않게 엄청 조심해야 하는데, 오늘 우리 엄마는 내가 사무실 이사 후 앓은 증세와 완전히 동일한 증상의 감기에 걸려서 앓아 누우셨다. 죄책감이 든다. 다행히 내일 원래 병원 가는 날이라, 의사 선생님께 관련해서 상담을 받을 예정이다. 문제는 요즘 병원마다 내과에 감기 때문에 사람이 너무나 많아서, 엄마도 2시간 이상 대기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15분 이상 앉아 있지도 못하는 상태인데, 나도 힘들어 죽을 뻔 했던 장시간 대기를 하실 수 있을지..

  엄마께 항암용으로 투약하는 약이 3개에서 한 개로 줄었다. 하지만 6차 항암 후 C.T 사진 결과가 그리 좋지 않았다. 이 나쁜 소식이 내 감기 몸살의 결정타가 됐다. 월요일에 간신히 일하고 있는데 그렇게 힘들게 6번이나 항암을 받았는데, 복수가 다시 찼다는 소식을 사무실에서 전해 듣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물을 마시는데 손이 덜덜덜덜 떨렸다. 그리고 그 다음날 결근했다.

 

7. 그리운 친구

  자유공원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동인천 파스쿠치에 갔다. 그 카페는 지금은 시집간 친구와 같이 가던 곳이었다. 대학교를 중간에 그만둔 친구는 엄청난 독서가였다. 어느 날은 자기가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로 유명한 주요섭 소설가의 단편 소설집을 읽었다면서, 그 책 이야기를 신나게 해줬다. 그런데 주요섭 소설 이야기를 한 다음부터 친구는 자꾸 주요섭 소설 속의 말을 따라했다. "처녀티 좀 나면 나아디갔디."  같은 말로 대화를 할 때마다 난 배꼽을 잡고 웃었다. 혼자 파스쿠치에 앉아서 듣고있기 힘든 멜론 최신가요 100 곡 중 하나로 추정되는 구린 가요를 들으며 (예전에는 선곡이 좋았는데..) 주요섭 소설체 생각이 나서 혼자 베시시 웃다가 눈물이 핑 돌았다. 친구를 그리워하는 감정이 헤어진 옛 애인을 그리워 하는 것 만큼이나 절절할 수 있음을 그 때 느꼈다. 그 친구에게 이런 저런 고민을 이야기 하고 푸념을 하면 항상 최상의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근데 그게 거짓말로 나 위로되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 친구는 정말로 내가 언젠가는 그 누구보다 행복해 질 것이라 믿고 있다. 그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친구의 말이 정말 이뤄지기 힘든 일 임을 알면서도 너무 힘들때는 이상하게 듣고 싶다. 다 잘될거라는 진심어린 친구의 말이.

 

 

 

메리크리스마스


난 어제 밤에 구토를 총 3번 하고 설사는 샐 수 없을 만큼 하다가 오늘 출근했다.
3박4일 내내 멀쩡하다가 왜 출근 전날 그런건지? (너무 오기 싫어서 그랬나)
결국 물 한모금 못 먹고 출근했는데 계단 내려가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고꾸라질 뻔 했다.
엄마가 전철안에서 토할 지도 모른다고 검정봉지까지 챙겨줬는데 서울역 들어오는데 갑자기 속에서 또 반응이 오는거다. 그래서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했다. 토 안하게 해달라고.
어제만 해도 좋았다. 친구랑 예스맨 보고 롤도 먹고 타조 차이티라떼도 먹고. 근데 집에와서 목마르다고 물 한컵을 벌컥벌컥 마셨는데 그게 그렇게 되냐고.
약 먹은 것도 다 토하고 웬만하면 회사도 안오려고 했는데 무슨 중요한 면담 있다고 해서 왔더니만 나는 다음으로 미뤄졌댄다.
그리고 오늘 따라 중고 카메라 팔기로 한 사람 만나고 들어가기로 했다.
이젠 열도 나고 막 오한이 오고, 중요한 면담이라고 해서 치마 입고 오느라고 다리도 시려 죽겠다.

근데 아까 회사 선배가 월말이라 일 많으니까 나보고 빨리 나으랜다.
그 선배 아프기만 해봐라. 나한테 한말 똑같이 해줄테다. 아 서러워.
체한데다가 감기까지 아주 탈수 제대로 되는구나. 아 괴로워. 콧물은 하도 닦았더니 코도 완전 아프다.
제기랄 진짜 지옥이 따로 없네.

건강 염려증

일상 2007. 12. 12. 11:51

이불을 뒤집어 썼다. 입에서 뜨거운 입김이 나온다.
아무리 생각해도 열이 나는 것 같다.
유리로 된 체온계를 꺼냈다. 살에 닿는 순간 그 체온계가 너무 차가워서 깜짝 놀랐다.

이런건 딱 하루만 누워서 푹 쉬면 그냥 낫는건데. 아 제발 딱 하루만.
새벽 5시다. 30분이나 일찍 일어났다. 해열제 때문에 몸이 식었는지 땀이 많이 났다.

으으.

나는 어렸을 때 부터 열에 취약한 아동이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한 번 열이 나면 39도 이상, 40도가 넘었던 적도 많았다고 한다. 아주 갓난쟁이 였을 때는 열 났다하면 40도.
그렇게 아동기 학동기 청년기를 지나서 난 이제 열도 잘 안나고 나도 한 38도선에서 더이상은 올라가지 않는다.
어렸을 때 비정상적인 편도선으로 인해 열이 자주 올라서 엄마가 물수건을 올려주고 체온계로 열 재고, 일찍 퇴근한 아빠가 들어오시면 아빠의 손이 그렇게 찰 수가 없었다.
 
열이 나면 만사가 다 귀찮고 그냥 누워서 쉬고 싶은데. 오늘 쑤시는 뼈마디와 부서질 듯 아픈 무거운 머리를 지탱하고 사무실에 와서 이러고 앉아 있다.
진짜 하루만 푹 쉬고 싶다. 아직 수요일이라 내일도 나와야 되고 내일모레도 나와야 하는데.

평일에 퇴근 후 절대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지. 하는 결심을 다시한번 굳히게 되는 순간이다. 저번 주 화요일 금요일에 명동을 갔던 것이 화근이다. 그러고선 토요일에 또 친구를 만났다. 아. 벌써 이렇게 체력이 바닥나서야 원. 사람들 조금 만났다고 이모양이라니.

타고난 약골체질에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이 체력 좋은 사람임에도 난 끔찍히도 운동을 싫어한다.
근데 이제 진짜 운동할 때가 임박한 것 같다. (아.. 재작년에도 나 이거랑 똑같은 소리 했지 아마)
이정도 아픈거 가지고 골골 대는 거 보면 좀 웃긴거 같기도 하고, 설마 또 작년같은 폐렴이 오는 것 아닌가 두려워 하는거 보면 오바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에이쒸. 그래도 자기전에 스트레칭 30분 정도는 매일 열심히 했는데. (유산소가 아니라 소용없나)


아아악.

일상 2007. 11. 30. 08:33
월요일 부터 수요일 까지 미친 척 하고 칼퇴를 했다.
우리 엄마가 미운털 박히니 너무 그러지 말라고 하실 정도였고 그럴 때 마다 나는
"그렇다고 일을 만들어서 할 필요는 없지 흐흐."
라고 말을 했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회사에 남아봤자 내가 안해도 되는 일 해야 하고 내가 일찍 갈 수 있는 건 근무시간에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어찌되었든
저번 주말에 푹 쉰것과 3일 연속 칼퇴와 여러가지 이유로 수요일 까지는 컨디션이 최상 이었다.

그런데 어제는 목이 아프더니 오후쯤에는 콧물이 계속 나오고 오늘 아침에는 열이 났다.
코를 너무 닦았더니 코가 빨갛게 헐었다.

익숙치 않은 칼퇴에 내 몸이 놀란건가.

집에 가서 자고 싶다.. 자고 싶다. 자고 싶다!!!!
좀있다 눈치봐서 이비인후과나 슬슬 걸어갔다와야겠다.

아 쉬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