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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밤

일상 2016. 10. 25. 13:06

  스마트폰이 등장한 후, 길치인 나도 실시간으로 지도를 보며 모르는 길을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고, 출퇴근길 무거운 책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하지만, 스마트폰 때문에 나는 잠들기 직전까지 아무 생각도 안하는 바보가 되었다.

  하루 중 가장 나다워지는 시간은 아마도 잠들기 전이 아닐까. 그래서 잠들기 직전의 나는 하루 중 가장 위험하다. 간밤의 나의 모습을 밝은 아침에 돌이켜보면 기가 막힐 때도 많다. 대체 왜 그랬는지 모를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어제 혼술남녀를 시청하고 누워서 음악을 듣는데, 갑자기 슬퍼서 1시 넘은 시각까지 울다 잠들었다. 나이가 좀 더 들어 현명해지고, 내 삶이 충만하다고 느끼면, 이런 밤을 보내지 않는 것이 가능할지. 낮에 아무 사건도 없었고, 평범한 하루였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가끔 이런 아무 일도 없었던 날에도 베개가 흠뻑 젖을 정도로 울다 잠이 든다. 세상의 모든 어른들이 다들 종종 울다 잠이 들곤 하는건지. 나만 이런건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웃긴 건, 우는 와중에도 잠은 또 꼬박꼬박 잘 잔다는 거다. 정말 슬픈 일이 있어서 울 때도, 어느새 눈을 떠보면 아침이니, 이런 면에서 나는 묘하게 긍정적인 거 같기도 하다. 걱정이 되어 잠을 못 이룬 경험이 아직까진 한번도 없으니까. 내가 태어난지 몇 달 안됐을 때 대전에서 강원도까지 날 보러 오신 할아버지께서 엄마에게 무슨 애기가 이렇게 잠을 잘자냐고 이러다 어디 잘못되는 거 아니냐고 말씀 하셨다고 한다. 엄마도 나 키우면서 잠 때문에 고생한 기억은 전혀 없다고 하셨고. 요즘에도 새벽에 천둥번개가 미친 듯 휘몰아쳐도 언제나 나는 꿀잠자고 일어나니, 잠복은 타고난 거 같다.

  유태인의 교육철학을 숭배하지도 않고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예전에 유태인 부모들이 지켜야할 덕목 중, 아이를 훈계하되, 잠들기 전에는 반드시 마음을 풀어주고 울면서 잠들게 하지 말라는 건 크게 공감했다. 어렸을 때도 종종 이렇게 울다 잠들곤 했는데 언제일까. 처음으로 울다 잠이 든 밤이.

  점심 때 입맛이 없어서 간단히 샌드위치에 커피 마시고 사무실 와서 일기를 쓴다. 울다 잤지만, 오늘도 평범한 하루를 보내길 기원해야겠지.

  극장에 가고 싶다. 혼자 영화를 보고 싶은데, 이조차도 여의치 않다. 보고 싶은 영화가 많았는데... 엄마 편찮으신 뒤로 한편도 보질 못했구나. 10월말까지 안쓰면 포인트도 사라진다고 메일 왔는데,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