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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04 2009년 10월 마지막날 파주.

10월 마지막날 친구와 놀러가기로 되어 있었다. 큰 회사를 다녀서 그런지 친구는 주말마다 회사 사람들 결혼식 가기 바빴다. 유일하게 결혼식이 없는 날이 10월 31일이라고해서 모카드회사에서 여행패키지(패키지라고 하긴 부끄러운 가격 12900원!) 를 신청해서 같이 떠났다.
기억 하는 사람은 기억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날은 비가 엄청 많이 왔다. 엄청 많이. 매우 찝찝한 여행이었지만, 매 주 집에서 누워 있는 시간이 앉아 있는 시간보다 더 길었던 나는 그런 식으로라도 외출을 하니 색다른 느낌이 났다.
파주 하면 대학교 때 다른 친구랑 갔던 여행이 떠오른다. 그 땐 봄이었는데 날씨가 엄청 좋았다. 갔다와서 다이어리에 경로를 자세히 적어놨던 기억이 난다.
비가 온다는 예보는 있었지만, 가을인데 엄청 많이겠어? 했는데 불행히도 엄청 많이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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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리 돌아다닐 때만 해도 비는 안왔는데 금방이라도 쏟아질 날씨였다. 말로만 듣던 헤이리는 넓고 산도 있고 좋긴 한데 왠지 전혀 관리가 안되고 있는 황무지 느낌이었다. 문 안여는 곳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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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대여해 주는 곳도 있었는데 헤이리 보려면 자전거 타는 게 딱일 것 같았다. 괜히 자전거 빌려서 타고 다니다가 빗속을 헤치며 자전거 탈 일이 생길 것 같아서 관뒀다. 일본 여행 갔을 때 보니까 우산 들고 다들 자전거 잘 타고 다니던데 어렸을 때 꽤 많이 자전거 탔음에도 불구하고 우산쓰고 자전거 타 본 적은 없다. 한손으로 탈 줄은 알지만.
헤이리를 구경하는데 "본격적으로" 비가 오기 시작했다. 너무 많이 왔다. 신고간 운동화가 윗 부분이 메쉬로 된 것이었는데, 거기로 물이 스물스물 기어 들어왔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느낌 중 하나가 젖은 양말 신고 있는 느낌인데 아직 갈 길이 구만리인데 헤이리에서부터 양말이 젖기 시작했다. 양말이 젖으면, 포레스트 검프가 생각난다. 포레스트가 베트남 갔을 때 나중에 다리 잘리는 (직급 생각 안남) 선임이 무조건 양말을 자주 가라 신으라고 타이르는 장면. 동감한다. 초등학교 때는 비 많이 오는 날이면 엄마가 가방에 새 양말을 챙겨주셨다. 맨발로 학교 갈 순 없어서 샌달 신고 양말신고 그냥 학교 가서 다시 갈아 신었다. 장화도 사주시긴 했지만, 창피하다고 안 신고 갔다. 왜 그랬을까.;;;
딸기가 좋아. 지하에 GS 25가 있었던 게 기억나서, 있다가 편의점 가서 양말 사야겠다고 생각하고 일단 아무데나 점심 먹을 수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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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앞에 있는 곳 들어간 것 치고는 괜찮은 식당 겸 카페에 들어갔다. 식당에 계신 아주머니께서 이런 날 왜 돌아다니느냐고 의아해 하셨다. 야외에서 먹을 수 있는 자리도 있는 예쁜 곳 이었다. 같이 간 친구는 야외에 안고 싶어하는 마음이 굴뚝 같음이 내 눈에 포착이 되었지만, 난 아무리 위에 천막이 있다 하더라도 그런데서 먹기도 싫고 싸늘하고 해서 그 마음을 애써 모른 척 했다. 난 나쁜친구. ; 해물 떡볶이는 매울까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먹을 만 했다. 난 궁중 떡볶이 먹고 싶었지만 친구가 야외자리 앉고 싶어하는 마음을 외면했으니 속으로 그냥 이거 먹자 하고 먹었다.
우리가 그 날 처음이자 마지막 손님일 줄 알았는데 나중에 여자 4명인 다른 팀이 왔다. 그 사람들 말로는 그 식당이 영화 촬영도 했던 식당이라고 했다.
신발 젖는게 너무 싫어서 비닐 좀 빌려서 그걸 싸매고 나갔으나 역부족이었다. 관광버스에서 오라고 한 시간이 다가와서, 바깥으로 나갔는데 한참을 헤맸다. 4번 출구를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전혀 모르겠는데다가, 지도도 없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고. 한참 헤매다가 간산히 찾아서 관광버스를 탔다. 결국 양말구입은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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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마한 프로방스 마을에 도착하여 허브 파는 곳에서 구경을 한참 한 다음 도저히 너무 축축해서 안되겠는 양말을 구입하려고 보니까 또 살 데가 마땅찮은거다. 쌩뚱맞게 캘빈클라인 매장이 있어서 들어갔는데 양말이 있길래 얼마냐고 물어보니 두둥. 만육천원!! 뉴코아아울렛에서 500원 주고 산 양말도 멀쩡하고 좋기만 한데 양말하나에 만육천원. 헐. 난 다물어지지 않는 입을 뒤로하고 급히 나왔다. 그리고 보세숍 가서 반스타킹을 만원에 구입. 후졌는데, 그 전 만육천원의 양말 여파 때문인지 비싸다는 생각 안하고 구입했다. 이날 여행의 가장 큰 에러는 내 신발이었다. 흑.
허브 매장에서 뭐 좀 구입할까 하다가 비오는데 들고다니기 귀찮다 싶어서 하나도 구입 안하고 임진각으로 이동. 임진각 맑은 때 갔음 좋을 것 같았으나, 완전 넓은 주차장이 배수가 전혀 안되서 임진각 전망대까지 가면서 험란했다. 정말로.
제대로 못보고 들어간 임진각에 있던 카페는 좋았다. 고급스럽고 휑한 느낌이었고, 깔끔했다. 무엇보다 엄청 좋은 오디오를 설치해 놓았는지, 사운드가 기가 막히는 거다. 차이코프스키가 만든 곡중에 제일 유명한 첼로곡이 나왔는데, 예전에 고등학교 때 듣고 좋다고 생각했는데 뭐 클래식에 관해선 문외한이라 곡명이랑 번호까진 못 외우겠고... 맘 같아선 다른데 다 생략하고 거기 바로 와서 음악이나 들으면서 아는 사람이랑 수다 떨고 싶었다.
짧은 휴식을 뒤로하고 관광버스를 타서 양말을 벗고 자다가 깼다가 했는데 서울에 진입하는 순간 교통이 hell 이었다. 너무 밀려서 멀미를 조금 했는데 다행히 늦지않게 교대에 도착하여, 인천 집까지 또 머나먼 여정을 거쳐 집으로 왔다. 지금 생각하니 꽤 재밌었던 거 같다. 아마 그날 안나갔으면 비오니까 귀찮아 하고 집에서 TV나 보고 있었을 것 같다. 뭐 난 그런 것도 좋아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