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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0.20 강박 시리즈: 비주류 강박 2

  밑에 주류에 대해 집착하는 사람에 대한 독설을 퍼부었지만, 사실 내가 진짜 쓰고 싶었던 건 비주류 강박에 대한 이야기다. 부족한 것 없이 태어나서 본인이 대한민국의 중산층이며 내가 정상이다. 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밥맛 없기는 마찬가지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재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결론은 그냥 다 싫다는 건가. 흐흐.

  '다락이 있는 집'에 있는 구절을 배껴 적느라 그 책을 내 노트북 옆에 갖다 놓았는데, 매번 읽던 구절 말고 그 앞을 다시 읽고 있다. 다시 읽어도 정말 주옥같은 소설이다.

  가령 이런 구절 말이다.

 

보통 나는 테라스 아래층에 앉아 있곤 했다. 당시 나는 스스로에 대한 불만족으로 괴로워 했으며, 이렇게 빠르고 재미없게 흘러가는 내 삶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나는 항상 이렇게 무거워진 내 마음을 가슴속에서 뜯어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읽으면서도 다시 한번 감탄을 하게 된다. 소설가가 다른 게 아니라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에 대하여 정확히 표현해주는 사람이라는 걸 어디선가 봤는데, 난 소설가가 아니라 내가 느끼는 감정을 안톤 체호프 처럼 표현하질 못하겠다. 하지만 체호프 같이 훌륭한 사람이 대신 표현을 해주고 그걸 또 읽을 수 있으니 정말 행복한 일이다.

 

  이 소설을 보면 미슈시의 언니 리다가 나온다. 리다는 부족할 것 없는 러시아의 꽤 높은 직의 공무원으로 일했던 아버지를 둔 훌륭한 가문의 딸로 나온다. 하지만 리다는 항상 민중을 위하여 봉사해야 한다, 그림을 그릴 때도 민중의 현실을 고발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회운동을 한다. 극 중 화자는 정치에는 크게 관심이 없으며 예술을 사랑하며, 단지 리다의 동생 미슈시를 사랑할 뿐인데, 리다는 그런 극중 소설의 화자를 경멸한다. 그래서 항상 리다와 주인공은 논쟁을 하게 된다.

 

" 전 예전에 그런 얘기들을 들으 적이 있어요. 그러나 한 가지만 당신께 말씀드리죠. 그건, 우리가 이렇게 손놓고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우리가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에요. 그리고 우리가 실수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구요.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옳아요. 지식인의 가장 고결하고 성스러운 과제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이쓴 만큼 봉사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죠. 물론 당신 마음엔 안들겠지만요. 그러나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들 순 없잖아요? "

 

  위 대사는 주인공과 리다가 논쟁하는 중에 리다가 한 말인데, 저 말로 리다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저걸 보면서 트위터에서 한국의 정치와 미래에 대해 자신들이 꽤나 선각자가 되는 양, 자기들이 주장하는 게 진리이고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안타깝다는 투로 본인이 꽤나 배운 지식인 인 거 처럼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본인들은 누릴 것을 다 누리면서 말이다. 또 이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주는 척 하는데, 그러면서 또 나이 든 사람들의 의견은 얼마나 무시하고 자신들의 젊음을 또 얼마나 과시를 하는지. 정말 대책이 없는 부류들이다. 

 

  아마 오래전 러시아에도 저런 부류가 있었던 모양이다. 가난하게 살며 단지 돈 벌기 위해서 단시간내 무지하게 많은 글을 썼던 (하지만 천재라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후의 명작들을 써낸) 체호프 가 느꼈던 감정이 어땠는지 이 소설을 보면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이런 비주류 강박을 가진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소수의 편을 열혈적으로 지지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외에 뭔가 자신의 삶은 특별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어떻게 보면 비주류가 되려고 무지하게 노력하는 것 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고,  또 자신은 참으로 개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남들과 잘 섞일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자랑인양 은연 중에 과시하는 경우도 있다.

 

  나도 항상 경계를 하는 것이지만, 자신의 취향이 좀 특이하고 뭔가에 대해 다른 사람보다 많이 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무시할 권리는 없다. 또 자신이 좀 배웠다고 해서 학력이 낮은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도 없는 거다. 다수의 의견에 따르며 평범하게 살고 있는 사람을 무시할 권리도 없는 거다.

 

  철딱서니 없이 주변에 민폐 끼치면서 난 내 꿈을 이루겠다 하는 사람보다, 자신의 꿈을 포기하면서 평범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절대 못한 게 아니라는 거다. 꿈을 포기하는데는 그만한 용기가 필요하고 결단이 필요하다. 못나서 그 사람들이 그렇게 평범히 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거다. 끈금없지만 프란츠 카프카도 당시에는 그냥 평범한 정시 출근 정시 퇴근하는 직장인이었지만, 지금은 위대한 소설가 아닌가? 평범히 살고 있는 사람들도 비범할 수 있는 거다. 단지 모를 뿐이지.

 

  결론은 일반적으로 정해진 길을 충실히 걷고 있다는 것 하나로  남을 무시해도 재수 없고, 자신이 꽤나 비범하다는 착각으로 개성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 하나로 남을 무시해도 재수 없다는 거다.

 

  난 그냥 그렇다.

  "내 삶이 특별했으면 좋겠다, 뭔가 재밌는 일이 계속 계속 벌어졌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나를 보며 우와~ 했으면 좋겠다." 이런 욕심도 없다.

  또 "요즘 어린 것들 쯧쯧쯧", 혹은 "정신 못차렸다, 예의 범절이 없다, 개념이 없다." 는 둥 이런 재수 없는 꼰대같은 말을 하는 나이든 사람이 되는 것도 싫다.

 

   생각해보면 난 취향은 비주류 쪽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또 비주류 안에서의 주류는 아니었던 것 같다.

   비주류 들이 모여 있는 중에서도 큰 주류가 있는 법이다. 예를 들면 애니메이션 오타쿠는 사회에서 비주류지만, 오타쿠 내에서도 주류가 있는거다. 예를 들면 건담 오타쿠, 에반게리온 오타쿠는 그들 내에서는 엄청난 주류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난 에반게리온 때문에 쫄딱 망한 에스카플로네를 좋아했었지 크크킄)

   또 난 락을 무지 사랑한다는 점에서는 비주류라고 볼 수 있는데, 락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는 또또 그 사람들 나름대로 룰 같은 걸 만든단 말이다. 예를 들면, 락은 현장에서 스탠딩으로 방방 뛰면서 소리지르면서 봐야한다. 고 하는 거 말이다. 왜 그렇게들 말하고 주장해야 되냐는 말이다. 공연 가서 제대로 못 놀면 바보. 이런거 말이다. 대체 왜 그래야 되냐는 거다.

  난 아무리 엠프에서 큰 소리가 나도 이성이 잃어지지 않고 방방뛰면 땀나고 힘들다. 근데 또 그렇게 비주류인 사람들 조차 나같은 사람은 촌스럽다고 제대로 못 논다고 무시를 하는 것이다. 참 아이러니다.

 

  술도 안마셨는데 이런 고등학생이 쓸 법한 일기를 쓰는 이유는...이게 다 "다락이 있는 집" 때문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나는 만 29년 동안, 평범과 특별함 주류와 비주류 사이를 오가면서 그냥 그렇게  꽤 재밌게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이런 개소리나 지껄이는 일기 쓰면서 말이다. 휴. 그러니까 결론은 내가 냉소적이라는 건가.

  보통 이런 일기는 나중에 읽어보면 엄청 쪽팔리고 쥐구멍 있으면 숨고 싶은 기분이 드는 법인데, 다신 읽지 말아야지.